CATEGORY
일정안내
시/에세이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by 이든혜윰 posted Apr 19, 2012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첨부
Extra Form
저자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jpg


 책머리에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에 없을 터이다. 나는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으로 세상을 편입시킬 수는 없었다. 나는 내 글의 계통 없음을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나는 여러 사람들이 흘린 액즙과 고름이 서로 섞이고 스미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것은 어찌 그리 어려운 일이었던지.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나에게 물어보았다. 과연 나는 어느 쪽인까? 그것이 중요한가? 어느 쪽이냐고 묻는 질문에서는 이분법적인 편가르기를 전제하고 있다. 작가 김훈은 미리 설정한 사유의 틀 속에 편입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인간의 개별성, 개벌적 존재의 구체성보다 더 중요한 이념과 가치는 없다고 한다. 동감한다. 사회복지분야에서 다양한 이론의 적용, 사업의 성과측정 등이 당사자의 개별적 존재성을 추상화시켜버리는 오류를 범하지 않으야 할텐데... 김훈의 글은 내 마음대로 해석해 보았다.

 

개 발자국으로 남은 마을

80p
정의로운 언설이 모자라서 세상이 이 지경인 것은 아니다. 지금 정의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약육강식의 질서를 완성해가는 이 합리주의의 정글 속에서 정의로운 언어는 쓰레기처럼 넘쳐난다.

82-83p
나는 개별적 삶의 구체성을 배반하거나 천대하거나 또는 그것을 추상화해버리는 모든 이론과 정책은 모두 사기극이라고 믿는다. 도덕은 인간의 개별성과 개별적 존재의 구체성 위에서 논의될 수 있을 뿐이다. 무너진 공가 속을 기웃거리며 떠난 사람들이 버린 가재도구를 뒤적거릴 때 분노와 슬픔으로 치가 떨렸다. 공가에 살던 사람들은 다들 어디로 갔나. 버리고 떠나 사람들의 고통은 어떻게 분담되었나. 도대체 누가 그들의 고통을 대신 짊어졌다는 말인가. 경제발전의 학설과 위기극복의 정책들은 단 한 번이라도 그들을 개별적 존재로 이해한 적이 있었던가. … 여기는 더 이상 인간의 마을이 아니다. 여기는 마야나 잉카처럼, 인간의 유적지이다. 버려진 마을들은 더 이상 어느 누구의 나라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여기는 도대체 누구의 나라인가. 시멘트 포장이 굳기 전에 돌아다닌 개 발자국 몇 개가 빈 마을로 들어가는 농로 위에 찍혀 있다.

언어의 순결은 사실에 바탕한 진술과 의견에 바탕한 진술을 구별하고 사실을 묻는 질문과 의견을 묻는 질문을 구별하는 데 있다. 언어의 순결은 민주적 의사소통의 전제조건이다. '사실'이 먼저 있은 후에 '의견'이 있을 뿐이다. 사실이 여론을 이끌고 가는 세상이 민주주의다. 여론이 사실을 뭉개버리는 세상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최근 내가 푹 빠진 이슈는 정치이다. 정치의 흐름이 이렇게 재미있는 것인지 왜 이제야 알았을까? 사실 정치적 이념, 이데올로기에 관심이 있기보다는 무엇이 정의로운 것인지, 지금 우리는 어떠한지... 같은 콩고물에 더 눈길이 가긴 한다. 이념의 틀에 생각을 가두지 않고 인간의 개별성, 인권, 정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아야 겠다. 쉽지는 않겠지만...


시간은 앞으로만 가는 것이 아니다

170p
휴가철이나 명절에 막히는 고속도로를 보여주면서 텔레비전 앵커는 이걸 ‘민족의 에너지’라고 말한다. 아깝고도 가엾은 에너지다. 차가 차 때문에 가지 못한다. 나 때문에 당신이 가지 못하고 당신 때문에 내가 가지 못한다. 다들 가려 하니까 아무도 가지 못하는 것이다. 이 기막힌 사태를 이미 아무도 기막혀하지 않으니 더욱 기막힌 일이다.

길은 저절로 생기지도 않지만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길은 길이 아닌 곳을 오래오래 다님으로써 길게 이어진다. 길은 인간이 지상에 남긴 자취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가장 겸손하다. 길은 마침내 산하를 건너가지만 산하와 대결하지 않는다. 산맥을 넘어갈 때, 길은 산맥의 사나움을 건드리지 않는다. 길은 땅의 가장 여리고 순한 곳을 찾아서 구불구불 돌아나간다.

고속도로는 길이라고 할 만한 굴곡이나 표정을 거느리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여정이 축적되지 않는다. 고속도로는 길이라기보다는 벽과 벽 사이에 뚫린 편리한 구멍과도 같다. 고속도로는 산을 돌아가지도 않고 산을 넘어가지도 않는다. 고속도로는 산 밑을 뚫고 간다. … 씽씽 달리는 고속도로를 따라서 신나게 밟고 삽시간에 목적지에 닿을 때 우리는 삶의 과정과 그 굽이들을 잃고, 길 막히는 톨게이트 앞에서 자동차가 소화되어지기를 기다릴 때 우리는 소통의 개별성을 잃는다.


고속도로에서는 출발지와 목적지 사이의 여정이 축적되지 않는다. 오로지 목적지까지의 도착이라는 결과만 있을 뿐이다. 산을 돌아가고 고개를 넘어가는 길에서 소통을 생각해 본다.

 
208p
된장찌개 국물은 된장과 여러 건더기들의 삼투와 종합으로써 이루어진다. 그 국물은 된장도 아니고 개별적인 건더기도 아닌, 어떤 새로운 창조물이다. 거기에 깊이가 드리워진다. 그 깊이는 인간을 위안하는 힘이 있다. 미역국의 위안은 섬세하고 된장찌개의 위안은 깊다. 이 깊이와 섬세함은 스밈과 우러남에서 온다. 건더기는 국물 속에서 우러나고 국물은 건더기 속에서 스민다. 완성된 된장찌개 속에서 건더기가 뭉그러져서는 찌개가 아니다. 건더기는 그 고유한 맛을 국물에 내어주고 나서도 건더기로서의 독자성을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때 건더기는 국물의 스밈에 의해 새로운 맛의 건더기로 신행하는 것인데, 이 조화 속에서의 독자성은 아름답다.

 
239p
꽃 한 조각 떨어져도 봄빛이 줄거늘
수만 꽃잎 흩날리니 슬픔 어이 견디리 -두보-

241p
꽃 속에는 멸망이 들어 있다. 꽃들은 아름다움의 절정에서 추락한다. 떨어져서 날리고 또 흩어진다. 멸망의 운명이 영광의 절정과 포개져 있다. 낙화는 낙엽보다 견디기 어렵다. 그리고 꽃의 영광과 꽃의 멸망은 그것을 바라보는 인간과 무관하다. 인간은 꽃의 바깥쪽에 있다.

256p
해바라기는 그 꽃이 처음으로 대면하는 세상을 낯설어하지 않고, 갑자기 터지듯이 활짝 피어난다. 해바라기가 열릴 때, 꽃이 세상을 수줍어하기보다는 그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꽃을 내외하게 된다. 세상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그 꽃은 강렬한 내면의 우월성으로 가득하다. 해바라기는 교태가 없고, 주저가 없다. 그 꽃잎의 노란색 속에는 어지럼증이 들어있다. 이 어지럼증은 꽃의 강렬한 내면의 어지러움 터인데 이것은 8월의 강렬한 햇빛 속에서 꽃으로부터 대기 속으로 퍼져나간다.

맨드라미는 꽃이라기보다는 논리적 형태에 도달하지 못한 원한의 덩어리처럼 피어난다. 그 꽃은 꽃을 성립시키는 기하학적 조형에 미처 도달하기 전에 꽃의 원형으로서 뭉클뭉클 피어난다. 그 꽃은 말하여질 수 없는 열정의 덩어리를 덩어리인 채로 세상을 향해 내민다. 그래서 그 꽃은 피거나 열리는 꽃이 아니라 내뱉어지는 꽃이라는 느낌을 준다. 맨드라미는 세상에 보여지고 싶은 욕망이 없어 보인다. 그 꽃은 다만 자신의 안쪽에 응어리진 것들은 밖으로 뿜어낸다. 맨드라미는 여름 내내 피어 있다. 맨드라미는 그 비논리적이고도 부조화한 꽃덩어리를 폭양에 내맡기고 여름 내내 그 주목받지 못하는 삶으로 꽃밭의 가장 구석진 모퉁이를 지킨다. 맨드라미꽃 속에는 울어지지 않는 울음이 들어 있다. 그래서 그 꽃은 아득한 시절의 샤머니즘을 연상케 한다. 맨드라미는 그 말하여여지지 않는 것들과 울어지지 않는 것들의 무게로 무겁고 또 무겁다.

채송화는 여름 꽃들 중에서 가장 맹렬하다. 작은 단추 같은 것이 그 존재의 밀도를 쟁쟁 울린다. 쟁쟁 피어난 채송화를 들여다보면, 그 꽃송이 속에서 자지러지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채송화는 충일한 꽃이다. 채송화는 피어서 색의 극한까지 간다. 그 작은 꽃은 몽상 속의 웃음소리가 요사스러울 뿐 아니라, 색깔의 끝에서 더 이상 갈 곳 없는 벼랑으 보여준다. 그 꽃은 강인하다. 날이 가물어서 모든 꽃들과 이파리들이 생기를 잃고 늘어져 있을 때도, 이 키 작은 꽃은 말라붙은 꽃밭의 맨 밑바닥에 들러붙어서 쟁쟁쟁 빛나고, 쟁쟁쟁 울린다. 그래서 더운 여름날 채송화를 들여다보고 있으면 여름의 더위는 색깔과 소리로 변한다.


된장찌개와 해바라기, 맨드라미와 채송화...
이 책을 읽고나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것이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이렇게 정교하고 논리적일 수 있을까?

나는 글을 쓰다보면 핵심의 언저리에서 머무른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여러 단어가 조합되어 그럴싸해 보이지만, 나는 답답하다. 내 글이 내 생각을 100% 표현하기가 힘들다.

김훈의 글을 자세히 보면 화려하고 거창한 수식어가 별로 없다.
의성어, 의태어도 난생 처음 접하는 낯설은 것들이다. 김훈의 글을 읽으면 저절로 이입이 된다. 김훈의 매력에 푹 빠졌다.


김훈
생각의나무 | 20070622
 
인터파크도서 제공
 

Who's 이든혜윰

profile

복지서비스1팀에 소속되어 홍보사업과 실습지도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위해 

낮은 섬김과 소통으로 소중한 인연을 이어가는 사회복지사가 되겠습니다.


웰리안 책리뷰

책을 읽은 소감을 나누는 게시판입니다.

  1. 문재인의 운명

    2012. 5. 23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3주기를 지나며 손을 뻗은 책... "문재인의 운명" 첫 페이지에서부터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당시의 상황에 가슴 한켠이 먹먹해졌다. 저자는 책을 통해 말하고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을 잃은 슬픔에 젖어 시간을 보낼 수는 ...
    Date2012.06.11 Category정치/사회 By이든혜윰 Views3921 Votes0 출판사가교출판
    Read More
  2. 나는 런던에서 사람 책을 읽는다.

    오랫만의 포스팅... 그동안 몇 권의 책을 읽긴 했는데, 도저히 소감을 정리한 마음의 짬이 나지 않았었다. 5월 입으로 되뇌이는 것 만으로도 벅찼던 5월, 그리고 복지관 평가가 맞물린 바쁜 시즌이지만 함께 나누고픈 책이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책 대신 사람...
    Date2012.05.30 Category시/에세이 By이든혜윰 Views3416 Votes0 출판사
    Read More
  3.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질문에 대하여

    책머리에 나는 내 말이 눈물이나 고름처럼 내 몸에서 흘러나오는 액즙이기를 바랐다. 그 분비물로 보편적 진실을 말하려는 허영심이 나에게는 없다. 나는 그 진물이 내 몸의 일부이기만을 바랐다. 세상은 읽혀지거나 설명되는 것이 아니고, 다만 살아낼 수밖...
    Date2012.04.19 Category시/에세이 By이든혜윰 Views2790 Votes0
    Read More
  4. 인간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인간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지만, 인간적 시선이 아닌 외래적 시선에서 바라보기를 즐겨하는 작가이다. 작년 연말 복지관 직원도서관에서 대여한 나무를 읽고 그의 두번째 책은 작고 얇은 "인간"이다. 이책은 희곡, 즉 연극을 염두에 쓰...
    Date2012.03.16 Category소설 By이든혜윰 Views2850 Votes0 출판사열린책들
    Read More
  5. 희망이 세상을 고친다

    이책은 발간되기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구당 김남수'씨가 영화배우 장진영의 위암치료를 위한 침뜸치료를 한 내용의 공개치료기인 이 책은 MBC 이상호 기자가 밀착하여 취재하면서 그동안 가려져 있던 장진영의 침뜸치료내용이 공개되었다. 물론, 세상에...
    Date2012.03.12 Category기타 By남리나 Views2609 Votes0 출판사나무와 숲
    Read More
  6. 소금꽃나무

    나는 TV를 거의 보지 않는다. 아이들의 성화에 못이겨 주말의 예능 프로그램 몇개 빼곤... 더욱이 뉴스는 보지도 듣지도 않는다. 집과 사무실 PC의 익스플로러나 구글크롬의 홈화면도 포털사이트는 일부러 피한다. 그래서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다. ...
    Date2012.03.05 Category정치/사회 By이든혜윰 Views2938 Votes0 출판사후마니타스
    Read More
  7. 아래로부터의 영성

    『성령의 역사 안에 존재해 온 여러 경향들은 두 가지로 정리된다. 하나는 위로부터의 영성이고, 다른 하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이다. 아래로부터의 영성은 하느님께서 성서 안에서 그리고 교회를 통해서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통해, 우리의 ...
    Date2012.02.23 Category기타 By문성훈 Views3196 Votes0 출판사분도출판사
    Read More
  8. 우린 마을에서 논다.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 얼마 전 수지영거 여사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눈물이 찔금...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몇차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몇년전 어느 심포지움에서 성미산마을에 대한 이야기는 한번 들은적이 있었지만, 자발적인 참여가 아니었어서 ...
    Date2012.02.21 Category정치/사회 By이든혜윰 Views3309 Votes0 출판사또 하나의 문화
    Read More
  9. 피노키오 이노베이션

    "혁신"이라는 주제를 만화로 풀어낸 책이다. 책표지의 설명처럼 술술 가볍게 2시간만에 읽었지만, 만만치 않은 내용... 그런데 피노키오와 이노베이션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저자는 나무인형이 사람으로 바뀌는 것 만큼이나, 이노베이션은 놀라운 변화를 가...
    Date2012.02.15 Category경제/경영 By이든혜윰 Views2706 Votes0 출판사21세기북스
    Read More
  10. 월평빌라 이야기

    시설사회사업 사례집인 ‘월평빌라 이야기’... 이책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는 작년에 진행되었던 제22회 대구사회복지사 워크샵에서였다. 이 워크샵에서는 기존의 워크샵을 진행해오던 방식에서 약간을 탈피하여, 사전에 심화연구참석자를 신청받고 사전 과제...
    Date2012.01.25 Category사회복지 By남리나 Views3789 Votes0 출판사푸른복지
    Read More
  11. 엄마를 부탁해

    이 책은 저자의 분신인 작가 지헌을 주인공으로 한 가족의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조금 특이한 점이 있다면 주인공을 ‘나’가 아닌 ‘너’로 표현함으로서 읽는 자로 하여금 더욱 공감을 쉽게 할 수 있게 하고 책 속의 주인공의 일만이 아닌 현실감을 느끼게 ...
    Date2012.01.23 Category소설 By정은정 Views2705 Votes0 출판사창비
    Read More
  12. 천개의 공감

    평소 공감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공감이란 타인의 사고(思考)나 감정을 자기의 내부로 옮겨 넣어, 타인의 체험과 동질(同質)의 심리적 과정을 만드는 일이다. 이런 사전적인 의미 말고도 나는 ‘공감’이라는 것은 타인과 하나가 되는 것 같아 좋다. 그래서 처...
    Date2012.01.23 Category시/에세이 By정은정 Views3026 Votes0 출판사한겨레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Next
/ 5
©2013 KSODESIGN.All Rights Reserved